본문 바로가기
소설

"네 번의 노크" 케이시 장편소설

by •-• 2022. 6. 30.
반응형

케이시 장편소설 "네 번의 노크" 메모

"이사갈 집을 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머릿속에서는 가구 배치를 마치고 어떤 향기로 집 안을 채울지도 완성했어요. 꿈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죠. 상상으로 시간을 메워가는 방법이 현재를 견디기엔 가장 좋은 처방이었어요. 과거는 혐오스럽고 현재는 답답하고 지루해서 오직 미래만 붙잡고 살았어요."

"그래도 귀신을 필요 이상으로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정말 무서운 건 악의를 가진 사람이다. 귀신은 봐도 사람의 속내는 나 같은 사람도 좀처럼 보기 힘들지요. 그 사람들이 모이면 거악이 되고 거악을 잠재우는 것은 파멸 외에는 없습니다. 손쓸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결국 터져 자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희생은 온전히 선량하고 약한 영혼들이 입게 되는 겁니다. 역시나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입니다."

"사람은 태어났다는 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합니다만, 이 세상은 언제나 원대한 목표나 포부를 강요하고 이것에 큰 압박을 느끼면 마음이 억눌려서 터져버리기 마련입니다. 거대담론에 투신하지 않아도 예술을 즐기고 바보처럼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도 흠이 아닙니다. 순수할수록 좋은 것입니다.그러나 순수하면 바보 취급을 받게 되지요."

"...순수한 사람은 천성적으로 남 탓을 하지 못합니다. 자기탓으로만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순수한 영혼들은 견디기 힘든 정글 같은 곳입니다. 사자나 임팔라 같은 동물도 있는 법입니다. 애초에 약한 초식동물로 태어난 것을 육식동물처럼 살라고 하면 안되는 것이지요. 약함은 인정하고 드러낼수록 상처가 아물고 빠르게 치유됩니다."

"지치고 힘든 미래의 불안에 겁먹은 영혼들에게 신 대신 24시간을 줍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단맛이 나기까지 하는 낮의 포근한 꽃바람, 저녁의 노란 노을의 냄새, 밤의 어둠에 가려져 있는 내일 뜰 태양.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겪게 하는 거지요.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하루가 아니어도 시간의 흐름이 눈부신 축복이라는 것을 일깨우지요.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약은 물, 바람, 기름입니다. 묵은 때를 씻고 바람을 쐬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위장을 채우면 됩니다."

"시간을 무시하지 마세요. 시간은 기억을 실어서 뒤로 보냅니다. 나쁜 건 빨리 시간에 태워 보내고 좋은 것만 남기세요. 행복은 움직이는 기차, 그러니까 현재에 있는 것이지 행선지 끝에 있는 게 아닙니다. 행선지 끝은 죽음입니다."


"잘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면 노트에 적어보세요. 누가 볼 것도 아니니 잘 쓸 필요는 없습니다. 가볍게 쓰세요. 사람의 뇌는 신기하게도 메모한 것은 잊어버려도 괜찮다고 인식합니다. 부끄러운 기억들은 종이에 쓰면 뇌를 속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는 건 아무 죄가 되지 않습니다. 남을 속이는 게 죄가 되지요. ...모든 순간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잊혀집니다."

"간혹 진정한 악이 있을 때 귀신들이 도망가기도 한다. 귀신조차도 서늘하고 두렵게 만드는 살아 있는 악은 어쩌면 이 사회의 냉혹한 분위기 아닐까."

"아차, 웃음소리만으로 행복을 유추해선 안 된다. 경계하지 않으면 스스로도 속는다. 웃음에 칼을 숨긴 사람들도 많았다. 저 웃음소리 중 하나는 칼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불편함. 불편함 앞에서 흐린 눈으로 바라보며 시선을 피하는 사람들을 보면 유난히 생각이 많아진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자는 캠페인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리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모두를 방관자로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불편함."

반응형